일기

시집. 2022.08.04.

daddy.e.d 2022. 8. 4. 15:08





1.
구안와사로 외부 미팅을 거의 하지 못한 날들이 벌써 3개월이 넘어간다. 이제는 얼굴도 윤곽이 제법 돌아오고 발음도 많이 좋아졌다. 오랜만에 미팅이 잡혀 서울에 나왔다. 약속장소인 서점에 들러 이런 저런 책을 읽는다. 책은 무수히 쏟아져나오지만 빛나는 책을 찾기란 참 힘이 든다. 그렇다고 독서 선택의 기준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기는 싫다. 철저하게 내 방식대로의 독서여야 삶에 남기 때문이다. 문득 시집과 소설이 눈에 들어와 오랜만에 시집 두 권과 소설을 샀다. 리뷰는 다 읽고 또 올려야지. 아니, 올릴 수 있겠지????

2.
소설은 띠지에 있는 문구때문에 구매했다. "실패한 내 인생에도 다시 떠오를 기회가 있을까?" 그래서 제목이 튜브다. <아몬드>라는 청소년 소설을 쓴 손원평 작가의 책이다. 힘든 요즘 다시 힘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카피에 반응했다. 저자의 유명세로 책을 고르지 않기 때문에 순전히 저 책을 산 건 카피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집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과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라는 두 권을 골랐다.

3.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 표제시인데 본문을 뒤젹여 찾아보았다. 아픔과 함께한 여름을 생각하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집었는데 역시 괜찮은 시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감상하라고 전문을 올려본다. 한동안 현대시를 읽지 않았다. 관념속 언어들을 끄적여놓고 시라고 우기는 게 너무 성의 없어 보였기 떄문이다. 요즘 다시 공감할 만한 시들이 눈에 보인다. 여전히 관념적인 시와 뒤섞여 있지만. 관념적인 시를 이해 못한다고 수준 떨어진다고 하기 전에 독자들이 좀 더 공감할 포인트가 많은 시를 제발 써주기를.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안희연

온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갔다
언덕이라 쓰고 그것을 믿으면

예상치 못한 언덕이 펼쳐졌다
그날도 언덕을 걷고 있었다

비교적 완만한 기울기
적당한 햇살
가호를 받고 있다는 기쁨 속에서

한참 걷다보니 움푹 파인 곳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자 사방이 물웅덩이였다

나는 언덕의 기분을 살폈다
이렇게 많은 물둥덩이르 거느리 삶이라니
발이 푹푹 빠지는 여름이라니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언덕은 울상을 하고서
얼마 전부터 흰토끼 한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했다

그뒤롤 계속 내리막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밤이 왔다
언덕은 자신에게
아직 토끼가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우라는 사실
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토끼일까
쫓기듯 쫓으며

나는 무수한 언덕 가운데
왜 하필 이곳이어야 했는지를 생각했다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시간은 반으로 접힌다
펼쳐보면 다른 풍경이 되어 있다


4.
한 시간 남짓한 미팅이 끝나고 또 침을 맞으러 간다. 여름 언덕이라, 여름이 가면 시원한 언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흰토끼가 뛰어다니는 그런 평탄한 언덕을 두 손 꼭 잡고 천천히 오르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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