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마태복음 19장.

daddy.e.d 2022. 3. 20. 07:06

 



오늘 본문에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흠을 잡기 위해 질문하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지, 안 된다고 하면 모세는 왜 이혼 증서를 주어 버리라고 했는지 또 묻습니다. 마치 프레임을 짜고 궁지에 몰기 위한 질문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안수하시는 장면도 나옵니다. 부자 청년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도 나옵니다. 재물이 많아 근심하고 돌아가는 부자 청년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부자와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그 와중에 또 베드로가 튀어나옵니다. 자기들은 다 버렸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합니다. 보통은 칭찬을 받을 걸로 생각했지만 또 이야기의 끝은 비유로 끝납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요.

오늘 묵상한 본문은 16절부터 22절입니다.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19:16-22)


어떤 사람, 부자 청년입니다. 이 청년은 영생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을 어떻게 하면 얻느냐고 물어봅니다. 영생에 대한 관심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고민입니다. 죽은 후의 삶, 내가 죽은 후에는 어떤 곳으로 갈까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절대 궁금할 수 없는 질문을 이 청년은 예수님께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기 때문에 더 궁금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해 주십니다. 선한 분은 오직 한 분이라고 하시면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합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놀라운 대답이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은 지켰다고 합니다. 모두 지켰는데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을까요?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온전하고자 한다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씀. 와서 나를 따르라.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아 이 말씀을 따르지 못합니다. 듣고 근심하며 갑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소유를 다 팔아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랐으면 좋았겠지만 예수님의 이어지는 말씀으로 볼 때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셨으니까요. 이 본문을 보면서 묵상한 것은 결국 마지막에 믿음의 시험에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재물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지킨 청년. 지키기도 쉽지 않은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다니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다 지킨다는 것은 정말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선택받은 민족, 모세의 후예로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모든 명예와 자부심의 상징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그것을 여지없이 흔드십니다. 재물이 있으면 믿음 생활을 하기에 참 좋습니다. 재물이 없을 때 오는 어려움과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소되니까요. 재물이 없으니 도둑질할 이유가 없습니다(물론 탐욕스러운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요). 살인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할 필요도 없습니다. 반대로 재물이 없을 때는 이런 유혹들이 훨씬 더 많이 찾아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가진 신실한 사람의 예를 드는 것입니다. 재물이 많으니 부모님을 모시기도 훨씬 수월합니다. 이웃에게도 많이 베풀 수 있으니까 이웃도 사랑하기가 상대적으로 재물이 적은 사람보다는 쉽겠지요.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서 반대로 재물이 없다면?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재물이 없을 때 믿음을 지킨다고 하면 과연 저 부자 청년처럼 할 수 있을까요? 아마 상당 부분 힘들 것입니다. 아마 계명을 지키기는커녕 먹고사는 문제에 매여 생각할 시간도 없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를 떠올려 보면 세상과 다름없이 모두가 부족함 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중에 믿음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지금의 교회를 보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 물질이 풍족하지 못할 때의 교회와는 확연히 비교가 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힘들지만 굶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의 말씀들은 지킬 만한 여유가 있습니다.

스스로 어느 정도는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부자청년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영생을 얻을 때에는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아니 없는 게 아니고 힘듭니다. 왜냐하면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재물을 포기하면 부자 청년처럼 근심할 수 있구나. 버리기 힘든 것이구나. 이 땅에서 누리고 베풀 수 있는 힘이 재물에 있는데,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그렇다고 부자 청년처럼 정말 모든 걸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늘 영생 앞에서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구나. 많이 있어서 든든한 마음이 든다면 늘 주님 앞에 가난한 마음을 유지하도록 해야겠구나. 덜어내고 덜어내는 연습, 물질이든 마음이든 늘 부자의 상태에서 항상 내려와야 하는 것이구나 묵상합니다. 내 마음에 나는 그래도 어느 정도 믿음 생활 잘 하고 있지 않아? 예수님 말씀을 다는 아니어도 많은 부분 지키려고 노력하고 또 그러고 있잖아? 라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쯤 돌아보아야겠다. 내 믿음의 원천이 혹시 재물에 있지는 않은지, 혹은 재물과 믿음이 섞여 있는 것은 아닌지.

부자는 아니지만 돌아보아야겠다. 지금도 재물이 있으면? 이라는 가정 하에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직 손에 쥐지는 않았지만 쥐었을 때 펼쳐질 미래와 믿음의 모습들이 있는데 그것이 진정 하나님 나라를 위한 마음인지 내 나를 위한 마음인지 분별해야겠구나, 내가 어떤 상태이든지 늘 주님 앞에 겸손히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겠다 묵상합니다.

주님. 제가 재물이 많든 지 적든지 그것이 제 믿음과 신앙생활의 원천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세상을 떠날 때, 천국에 갈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혹 이 땅에서 살면서 이미 하나님 나라보다는 재물이 먼저라면 그 마음에 천국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믿음의 분별력을 주옵소서. 부자 청년처럼 근심하지 않도록 늘 마음을 비우고 주님 앞에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오늘도 말씀으로 채워주시는 주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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