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있는. 2022.04.26.

daddy.e.d 2022. 4. 26. 07:48



아침 식사 시간. 둘째가 계란을 먹는데 노른자만 빼고 먹는다. 왜 그렇게 먹냐고 하니 노른자는 알이 있어서 병아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름 진지해서 혼내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알은 아빠가 다 먹을게, 라고 대답하고 얼른 먹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첫째를 키울 때였으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윽박지른 다음 꾸역꾸역 먹게 했을 텐데. 둘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거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첫째는 기억도 못하거나 성격이 나름 쿨해서 금방 잊어버리긴 하겠지만 내가 떠올리고 뉘우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안대를 하고 있어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종일 다녔다. 물리치료를 하는 동안 밖에서 기다려주고 입술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불편한 남편을 위해 국밥을 사다주었다. 둘이 마주 앉아 국밥을 후루룩 먹는다.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중풍이셨을 때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 밥을 드시거나 침을 뱉을 때 질질 흘리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정도는 아니자만 마비가 오니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흘린다. 아내가 밥풀을 떼어주기도 하고 국물을 떠먹다가 주루룩 흘리기도 하고. 그래도 아내는 내 모든 걸 다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또래에 비해 어린 나이에 시집와 고생 많았는데 그래도 남편을 한결같이 믿어주는 건 결국 아내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 아내는 남편이 운전 안 하고 자기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닌 시간이 이렇게 오래인 건 역대급 사건이라며 나름 어필한다.

아내가 첫째가 네 살 때였나? 면허를 따겠다고 해서 면허시험장에 데려가 1종 보통을 등록했다. 수동으로 트럭을 운전하는. 아내는 싫다고 했지만 운동신경이 좋았기에 반강제로 시켰다. 그래도 차의 원리는 수동운전을 해야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그렇게 등록하고 운전학원에 갔을 때 모든 선생님들이 에이 왜 여자가 여기 왔어 이러면서 피하더란다. 그런데 첫 시간 지나고 담당 선생님이 주변 선생님들에게 말하길, 왠만한 남자보다 낫네! 수제자야! 라고 말했다며 나름 뿌듯해했다. 거기다 쓸데없는 필기시험 100점까지.

아내가 말한다. 여보, 내가 운전하니까 편하게 타고 다니지 만약 아가씨(내동생)처럼 운전했으면 안 맡겼겠지? 나는 대답했다. 응, 차라리 내 한쪽눈 운전이 더 안전할거야.

한쪽 눈꺼풀이 안 움직여 모니터를 제대로 볼 수 없어 집에 일찍 왔다. 밀린 청소도 하고 정리정돈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려오고 밥을 챙기고 씻기고 설거지를 하고 부모님께 영상통화로 안부를 전하고 하루가 간다.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봐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이 블로그를 보실지는 모르겠다.

어제는 많이 낙심되었는데 오늘은 맘이 평안하다. 소식을 들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해 주신다는 말씀이 큰 힘이 된다. 아침에 큐티를 하는데 눈물이 난다. 반쪽만 울고 반쪽만 웃고. 주님을 온전한 얼굴로 경배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기도를 요청한 목사님께서 블로그 글을 보시고 답을 주셨다.

무척 공감이 갑니다. 이 시기를 이겨내어 정금처럼 되어...어느날 거울앞에 비친 집사님은 하나님의 용사로 보여지길 작은 손길 모아봅니다.


감사하다. 꼭 온전한 얼굴로 말씀 앞에 다시 설 때 온전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울 수 있기를.



노래가 한 곡 생각난다.
<나란 놈은 답은 너다>(리쌍)

매일 핑계뿐이고 승질 부리고
우기고 참 못났지만 나에겐
니가 꿈이고 사랑이야
사랑에 답은 없지만
나에겐 니가 답이야
그게 내 진짜 마음이야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 쉽게 말해도 내가 말이 안 돼도
나란 놈은 답은 너다

<나란 놈은 답은 너다>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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