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감수성. 2022.04.22.

daddy.e.d 2022. 4. 22. 22:11





드디어 아내와 둘이 첫째를 데리러 간다. 둘째와 막둥이가 어린이집에 간다. 긴 육아의 터널을 빠져나와 이제 조금 한숨 돌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앞으로 6년, 어쩌면 그 이상을 다녀야 하는 길일지도 모르는데 아내도 운전을 해야 하지 않겠냐며 키를 넘겼다. 싫다고 하는 아내. 큰 차는 부담스럽다고 구시렁거린다. 마침 두통이 있어 핑계가 좋다. 그리고 나는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게 참 좋다. 그렇다고 매일 운전을 시키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이면 된다. 회사에서 잠깐 일을 처리하고 아내가 주문한 커피를 찾아 1층에서 차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자기에게 맞게 차를 세팅하고 있는지 오래 걸린다. 바람도 찬데 왜 이렇게 안나오는 거야.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아내가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온다. 나는 아내가 큰 차를 몰고 나를 향해 올 때 참 행복하다. 뭔가 뿌듯하고 아내와 잘 어울리는 것 같고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아내와 함께 꿈의학교로 간다. 벌써 네 번째 외박이다.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보았지만 또 직접 보는 아들은 얼마나 컸을까. 지난 번에도 뭔가 어색했는데 이번에도 또 훌쩍 자랐겠지? 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에 도착했다. 집중이 안 되어 중1 아이들 보라꿈 라이브를 제대로 시청하지 못했다. 나중에 올려주신 걸 보면 되니까 상관 없다. 내일 막둥이 돌사진을 찍어야 해서 교복이며 후드티를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잘 못 챙길까봐 미리 도착해서 끝나자마자 말해주려고 했다. 역시 제일 늦게 나온다. 집에 있을 때는 속터지는데 학교에 있으니 크게 뭐라고 할 일도 아니다. 밥을 안 먹고 가겠다는 걸 먹으라고 하고 아내와 학교를 잠깐 산책한다. 같은 목장 부모님을 만나 또 이야기도 나누고 학년장 선생님과 또 잠깐 인사도 드렸다.

집에 오는 길 점심을 먹자고 대산읍 김밥천국에 들렀다. 아내의 최애음식 떡볶이 혹은 라볶이. 나는 쫄면, 아들은 우동. 폭풍흡입을 하고 집에 오는 길 아들은 역시 30분을 떠들고 조용해진다. 시를 썼는데 오늘 선생님이 읽어주셨다는 둥, 바닷가에 가서 좋았다는 둥, 짧은 시간 동안 학교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잠시 마트에 들르고 간식을 사고 집에 왔다. 사진촬영이라 이발을 위해 동네 미용실을 들르고 어찌어찌 둘째와 막둥이까지도 다 이발을 했다. 집에 와 아들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보라꿈 동영상을 봤다.

깜짝 놀랐다. 아들이 쓴 시를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데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아니, 너가 쓴 거 맞아? 아빠와는 달리 감수성이 좀 부딘 아이라고 생각했다. 문과보다는 이과에 가깝다는 생각도 하면서 국문과를 나온 아빠와 피아노를 전공한 엄마 사이에서 이과 성향의 아들이 태어난 게 신기하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 감수성은 무엇인가. 순간 요리를 하다 말고 아들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 정말 너가 쓴 거 맞아? 아빠 깜짝 놀랐다고 했더니 씩 웃으며 안아준다. 두 시간을 쓰고 두 시간을 고쳤다는 말과 함께. 기분이 묘하다. 뭔가 아빠 엄마는 발견하지 못했던 아이의 잠재력을 학교에서 발견해준 기분.

긴장된다. 글쓰기를 잘 해보겠다고 책을 샀는데 열심히 봐야겠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의 글쓰기를 보여줘야지. 묘한 기분으로 하루가 간다. 이럴수가 아들에게도 감수성이 있었어. 정말 너무 너무 감사하다.

반응형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신. 2022.04.25.  (0) 2022.04.25
블로그. 2022.04.23  (0) 2022.04.23
병원. 2022.04.19.  (0) 2022.04.19
꽃보다 부대찌개. 2022.04.17.  (0) 2022.04.17
지하철. 2022.04.16.  (0) 2022.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