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눈은 내 몸의 등불. 2022.04.14.

daddy.e.d 2022. 4. 14. 06:16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악하기에 보일 표적이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보다 더 크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등불의 비유를 통해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몸도 어둡다고 하십니다. 뒤이어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를 향한 예수님의 질책이 나옵니다. 손 씻지 않으시고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상히 여기는 바리새인에게 잔과 대접은 깨끗하나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하십니다. 십일조는 드리면서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버리는 평토장한 무덤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하십니다. 듣던 한 율법교사가 자신들까지 모욕하는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그러자 더 심한 말을 하십니다. 율법을 통해 많은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고 자신들은 한 손가락도 그 짐에 손 대지 않는다고, 선지자들의 흘린 피를 다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거세게 달려들어 예수님께 계속 따지고 입에서 나오는 말로 책잡으려고 노립니다.

오늘 묵상한 것은 34절입니다.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등불을 어두운 데에 두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등경 위에 둡니다. 마찬가지로 눈도 등불이라고 하면 어두워지면 안 됩니다. 늘 밝아야 합니다. 입과 마찬가지로 눈도 마음에 있는 생각과 의지가 드러나는 곳입니다. 마음에 품은 것을 따라 눈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욕망하는 곳을 바라보는 것이 눈입니다. 이 눈을 성하게 해야 합니다. 밝게 해야 합니다. 어둡고 탁하면 안 됩니다. 이어지는 35절 말씀에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고 합니다. 결국 내 마음이 어두우면 눈도 어두워지는 것이구나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책에서 잘 나타납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합니다. 예수님의 행위를 자신의 율법을 근거로 판단하기에 눈도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옳거니. 손을 씻지 않는구나. 왜 안 씻고 먹는 거지? 정결하지 못하군. 판단합니다. 예수님도 그냥 넘어가시면 되지 또 거기에 잔뜩 말씀을 퍼부으십니다. 탐욕과 악독, 평토장한 무덤 등등. 무엇이 중요한지를 조목조목 지적하십니다. 율법교사는 수치심을 느낍니다. 모욕감을 느낍니다. 따져 묻습니다. 그러면 식사 자리이니 예수님께서도 적당히 이야기하고 끝내실 법도 한데 더 심한 말을 하십니다.

결국 그 자리를 나오실 때 거센 항의를 받으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교사들. 아마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책잡고 끌어내려야 하는데 할 말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계속해서 노립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서 아, 정말 눈으로 입으로 나오는 것은 마음을 따라서 표현되는 것이 맞구나. 자신을 돌아보았다면 좋았을 텐데. 사실 예수님은 그들을 정말 사랑하시기에 강하게 자극을 주신 것이구나. 애정이 없다면 굳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될 갈등의 씨앗을 던지지 않으셨을 텐데.

돌아봅니다. 나도 내가 만든 율법을 따라 사람을 참 많이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행위와 말을 묵상하고 거기서 오류를 찾아내고 정죄하고. 내 눈이 너무 어둡구나 돌아봅니다.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혼탁하다.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서라도 내가 하루 종일 보는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면 참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아직도 내면의 어두움이 많은 이 모습. 내 안에 빛이 얼마나 어두운지 잘 점검해야겠습니다. 내 온 몸이 밝아 어두운 데가 없을 때에야 온전히 밝아야 하는구나. 내 안에 빛을 밝히는 하루가 되어야겠다. 내 마음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점검해야겠다, 묵상하고 적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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