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누가복음 10장.

daddy.e.d 2022. 4. 12. 05:56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고 하십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평안하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칠십인이 돌아와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한다고 말하는 이야기들을 들으시고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십니다. 그 후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 율법교사는 자신이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 누가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대답하십니다.

묵상한 것은 30절부터 37절까지 말씀입니다. 율법교사는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는데 예수님의 대답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인지로 끝납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는데 제사장도 레위인도 강도 만나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그냥 피해 갑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부정한 것을 만지면 안 된다거나 제사를 도와야 하는데 역시 피흘린 사람을 도울 시간이 없었다거나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결국 피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방인 취급하는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에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갑니다. 심지어 돈까지 주면서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율법교사는 말문이 막혔을 것입니다. 비유 자체가 완전히 예상과 틀을 깨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마음을 다해 사랑할 이웃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아마도 앞서 이야기한 예수님의 말씀을 어느 정도 지키며 산다는 확신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불쑥 강도 만난 사람을 등장시킵니다. 아, 그러면 이 사람을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인가보다, 라고 예상하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니,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합니다. 어라? 그 누구보다 사회적 지위와 모범을 보여야 할 두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가네? 이럴수가. 그 때 또 불쑥 등장합니다. 자신들이 이방인 취급하는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강도 만난 사람을 돕습니다. 이쯤되면 사마리아인처럼 도우라고 이야기를 끝낼 법도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님은 묻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이 누구냐?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가 진정한 이웃입니다. 관점을 바꾸십니다. 베푸는 자의 입장이 아니라 베풂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누가 진정한 이웃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구나.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내 자신 같이 사랑할 대상인 이웃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돌아봅니다. 내 중심에서 강도 만난 자의 중심으로 바꾸는 관점. 내가 어느 정도 주님 말씀대로 살고 있는 것 같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비교적 옳은 삶을 살고 있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반전을 주는 교훈이구나. 내가 자비를 베풀고 내 관점에서 이웃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 받을 사람의 입장에서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이구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헌금을 하고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고 위로의 말 몇 마디를 건네는 것으로 내가 비교적 옳게 산다, 이웃을 이정도면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 자비가 절실한 사람의 입장에서 좋은 이웃이 되어야겠구나 묵상하고 적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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