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고니온에서 바나바와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지만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데인들이 무리들을 선동해서 유대인을 따르는 자와 두 사도를 따르는 자로 나뉘게 합니다. 이에 루스드라로 피한 바울은 평생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 구원받을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일어나 걸으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두 사람을 신이라고 말하며 제사 지내려고 합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옷을 찢으며 자신들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진정시켜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을 시기하는 유대인들이 결국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내칩니다. 제자들이 그런 바울을 둘러쌌을 때 바울은 죽지 않고 일어나 더베로 간 다음 그 성에서도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안디옥으로 돌아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합니다.
오늘 묵상한 것은 9절과 22절입니다. 바울이 날때부터 발을 못 쓴 사람을 보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구나. 그 믿음을 보고 큰 소리로 일어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습니다. 마치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어서게 했던 기적이 떠오릅니다. 중요한 것은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봅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서 믿음이 시작되는 것이구나 묵상합니다. 바울이 아무리 그 사람이 아프다 한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었다면 일어나 걸으라고 하지 않았겠구나. 성령께서 바울의 마음에 말씀을 듣는 그 사람을 주목하게 하셨구나.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믿음에서 반응하는 것이구나, 그리고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이 참으로 맞는구나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지만 19절에 보면 돌로 맞습니다. 죽었다고 여겨질 만큼 움직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치고 자신들에게 제사 지내려고 할만큼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행한 일을 보았을 것인데 결국 바울에게 돌아오는 것은 돌팔매질이었습니다. 그것도 죽었다고 생각될 만큼 무자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주님께서 그런 바울을 살게 하시고 오히려 복음을 더 담대히 전해 제자들이 많아지게 하십니다. 22절에는 이런 일들을 통해서 제자들의 마음을 더 굳게 합니다.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합니다. 제자들은 낙심했을 것입니다. 제자로 산다는 것이 바울 스승처럼 결국에는 배척을 받고 돌로 맞아 죽을 수도 있겠구나. 두려움이 찾아왔을 것이고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회의가 드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모든 것이 내가 바라는 욕망대로 쉽게 이루어지고 근심걱정 없이 살게 된다는 뜻이 아니구나. 오히려 많은 환난을 겪게 되는 것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하는 바울을 묵상합니다.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해가는 초기 사역부터 바울은 험난한 일들, 아니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들을 겪게 됩니다. 눈이 멀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 바울. 바나바를 통해 제자들과 교류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는 바울. 돌에 맞아 죽을 뻔했지만 죽지 않고 복음을 전하면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니님이 정한 순간이 아니면 결코 죽을 수 없다.
환난이 사라진 교회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 재물이 풍족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예배당에 출석하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통해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런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분명 외적인 교회는 많이 축소될 것이고 사람들에게 제자의 삶을 살지 않은 대가를 치루게 될 것입니다. 마치 바울이 복음을 전해야만 했던 초대 교회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믿음을 지키기가 더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구나. 9절에 나오듯이 성령께서 듣는 사람 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이구나 묵상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환난을 겪게 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당연한 것이구나. 돌에 맞을 만큼 배척을 받을 수도 있으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기에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믿음 안에 머물러 마음을 굳게 해야겠다 결심합니다.
마지막으로 27절에 보면 교회를 모은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이구나. 건물이나 외적인 형태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됩니다. 자본주의화된 교회, 크고 으리으리한 외적인 교회로 대표되는 공교회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믿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좀 더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오늘 말씀을 적용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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