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독의 군병들은 예수님을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힙니다.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합니다.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칩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강도 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시며 결국 영혼이 떠나십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일어난 많은 기적들이 나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지진이 납니다.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 예수님의 제자였던 그는 빌라도에게 가 담대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고 장사 지냅니다.
오늘 묵상한 본문은 39절부터 44절까지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말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거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인간이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죽는다는 것. 죽어야지만 구원할 수 있는 역설 앞에서 어떤 마음이셨을지 가늠이 안 됩니다. 자신이 죽어야지만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이라면 아마도 십자가에서 충분히 내려오시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충분히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입니다. 내가 죽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구나. 내 뜻과 생각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죽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구나.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와 같을 수 있겠다. 바보같아 보이지만 나를 죽이고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의미이구나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받을 수 있는 오해들. 너 왜 그렇게 사니. 야, 너부터 좀 제대로 해 봐. 그러면 나도 예수님 믿을게, 라는 비아냥도 듣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 십자가를 묵묵히 지는 것이구나.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순종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리고 완전히 죽어야 부활하는 것이구나. 그냥 적당히 죽는 것이 아니라 숨이 떠나갈 때까지 완전히 죽어야 하는 것이구나. 내 생각과 자아를 주장하면서 십자가를 진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구나.
내가 진 십자가는 무엇일까.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없을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문제들 앞에서 내가 온전히 죽어야겠다 묵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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