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혼자서. 2022.07.27.

daddy.e.d 2022. 7. 27. 13:08




1.
예전에는 혼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는 걸 상상할 수 없다. 혼자서 뭘 한다는 게 너무 싫기도 했고, 혼자서 주문을 하고 혼자 테이블에 앉아 식사나 커피를 마신다는 게 너무 어색하고 싫었다. 늘 당당한 것 같지만 사실은 소심하고 혼자서도 뭐든 잘할 것 같았지만 외로운 건 너무 싫었다.

2.
출장을 가도 밥집을 못 들어가고 햄버거 가게에서 감자튀김과 콜라를 곁들여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어먹거나 숙소로 음식을 포장해 와서 혼자 티브이를 보며 식사를 하곤 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혼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혼자서 차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3.
한 때는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많은 게 자랑이었는데, 술을 끊으니 반, 퇴사하고 나니 그 반, 자영업을 하고 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또 그 반이 사라졌다. 안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 관계들이었음을 너무 많은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쏟고 나서 깨달았다.

4.
그 빈자리를 또 새로운 번호가 조금씩 채워간다. 가깝다고 느꼈으나 마음의 거리가 멀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 같았던 의리가 아주 작은 계기로 와장창 무너지기도 했다. 그래도 늘 진심을 다했다. 진심을 다한 것이 실수나 지혜롭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으나 늘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진심이었다.

5.
판단은 하나님의 몫이겠지만 또 풀 수 있는 관계는 사는 동안 풀렸으면 좋겠다. 차돌순두부찌개를 시켰는데 아줌마가 묻는다. 무슨 맛으로 드릴까? 아, 무슨 맛이 있는데요? 보통, 매운맛, 순한맛 있어요. 아, 그럼 매운맛으로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사라지는 아줌마.

6.
눈앞에 아주 뜨겁고 매워보이는 차돌순두부찌개가 놓인다. 한입 넣었다가 너무 뜨거워 밥그릇에 뱉었다. 구안와사가 다 낫지 않아 아직은 조금 불편한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먹는다. 게다가 아직도 제대로 감기지 않는 오른쪽 눈으로 뜨거운 기운이 쉴새없이 올라오고 난 눈물을 흘린다. 흘리고 싶어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지만 가끔은 실컷 울고 싶을 때도 있다.

7.
억지로라도 흘려야 되는 눈물이 내게는 많은 것일까. 많은 것을 떠나보냈지만 아내와 가까와졌고 아이들이 선물로 내 삶에 찾아왔다. 후회한들 소용없는 과거지만 가끔은 상처가 되어 나를 찌르기도 한다. 보이는 무심한 표정에는 늘 전쟁터인 내 마음이 겹쳐져 있다. 과거와 씨름하며 전쟁이 벌어지는 마음 한켠.

8.
뜨거운 찌개를 후후 불어 먹듯이 인생의 매운 맛을 마음을 다독이며 식혀가는 중이다. 흘리고 싶어 흘리는 눈물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눈물의 농도는 진해지는 것일까. 눈물이 떨어져서일까. 찌개가 더 짠 것 같은 이 기분. 애꿎은 휴지만 계속 뽑는다. 한 공기를 다 먹었는데도 반찬과 찌개가 남아 밥 한 공기를 더 시킨다.

9.
거래처를 돌며 이런저런 아픈 상태에 대한 이야기와 업무 이야기를 한다. 아직 낭만이 살아 있는 업계이지만, 이제는 낭만이 빠져나가는 자리에 숫자와 퍼센트와 이익만 남는다. 일에도 매운맛이 제법이다. 급한 마음을 숨긴 체 태연한 표정으로 협상을 한다. 찌개를 후후 불듯이 급한 마음의 고삐를 당기며 한걸음한걸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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