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익숙해진다는 것. 사도행전 3장.

daddy.e.d 2022. 5. 3. 08:27



오늘 본문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 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곳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합니다. 모든 백성이 놀라고 사람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입니다. 그곳에서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라고 권면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시고 지금이 바로 그 말씀이 이루어진 때라고 담대히 설교합니다.

묵상한 것은 6절입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사람.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구걸해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삶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갈 때 그의 눈은 늘 구걸하던 모습대로 올려다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를 베드로와 요한이 바라봅니다.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고 합니다. 그 사람은 기대했습니다. 자신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합니다.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합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습니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히 놀랍게 여깁니다.

평생을 구걸하는데 익숙했던 그에게 일어난 놀라운 기적. 그런데 오늘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과연 다리가 나은 사람은 그 뒤에 행복했을까? 몸이 불편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불쌍하기에 구걸할 때 사람들에게서 이런저런 물건과 음식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오히려 어쩌면 익숙한 그 삶이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것이 어쩌면 자신의 무기였을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그런 무기를 베드로와 요한은 없애버립니다. 걷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늘 미문에 앉아 은과 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올려다보던 그 사람. 막상 일어나 걷고 뛰니 너무 좋았을 것입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을 놀랍게 여기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기적이 비슷합니다. 출애굽 할 때의 이스라엘 백성도 그러했습니다. 기적을 보면 하나님을 높였지만 다시 먹고사는 문제로 돌아가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이 사람의 남은 삶은 어떠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게 되면 삶이 달라졌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기적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내는가가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묵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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